불국사의 당간지주는 괘불대이다.

2011. 3. 10. 10:34幢竿支柱와 掛佛臺

 

첫째,가람 공간상으로 볼때

괘불대는 거의가 마당이 넓어서 괘불을 현조하기 좋은 금당 앞 마당에 주로 있지만 ,불국사의 경우엔 금당 앞의 공간에 두개의 큰 석탑이 있어서 괘불을 현조해서 대중들을 참석시키기에는 다소 비좁은 면도 있고, 현재 두쌍의 석주가 위치한, 중문과 안양문 앞의 공간은 금당 앞 공간보다 훨씬 더 넓고, 평평해서 괘불을 현조한후 소위, 야단법석[野檀法席]을 하기에는 적절한 장소로 보인다.

 

둘째, 자체의 구조적, 의장적인 면으로 볼때는  필자가 조사해본 자료에 따르면,괘불대의 평균 높이가 약 1.3 미터, 당간지주는 약 3.2 미터이고,당간지주는 폭이 좁고 길이가 긴 형태의 깃발을 세우기위한것으로 주로 1쌍의 지주가 세워졌고,  반면, 괘불대는 두쌍의 지주가 평균 4.7미터의 거리를 두고 세워서 폭과 길이가 긴 괘불을 현조 하였다. 불국사의 지주는 두쌍이 서로 4.16미터릐 거리를 두고 세워져 있다.  또한,전반적인 괘불대의 외형은 당간지주에 비해 크기도 작고, 장식 역시 전혀 없는 아주 간소한 형태로 만들어져서,오로지 중간의 깃대를 지지하기위한 한가지 목적으로만 만들어졌지만, 그렇다고하여 ,괘불대는 장식을 절대해서는 않되고, 높이도 작게만 만들어야 한다는것은 아닐것이다.

 

불국사와 비슷한 경우로 익산 미륵사지 당간지주 2쌍이 있지만, 미륵사지의 경우는 남문지의 중심 주축선을 중심으로 동탑지의 중심축이 61 미터 , 서탑지의 중심축은 57.25 미터 떨어져있고, 또,각각의 당간지주는 남문지의 중심축선으로부터 각각 동탑지 앞 당간지주가 48.3미터. 서탑지 앞 당간지주는 42.95미터 떨어져 있다, 따라서 두 당간지주 사이의 거리는 91.25미터가 떨어져 있다.따라서. 괘불의 평균적인 크기를 고려할때, 미륵사자의 당간지주는 각 동탑지용 당간지주, 서탑지용 당간지주로 존재하게 되는것이다.즉,불국사와 미륵사지의 경우는 전혀 다른 경우라 할수 있다.

 

셋째,일인 학자인 藤島 亥治郞이 쓴 조선건축사론(1973. 서울 경인 문화사, 附図 제 14)에서 표기된 斜線으로 표시된 좌,우측 두 基의 당간지주는 아무런 유형의 물증이나, 증거없이 단지 그 일인 학자의 類推에 따른 배치일뿐이고(불국사의 가람 배치를 상상하여 좌,우측에 표기), 간혹, 원래에는 좌,우측에 각각 1기씩 배치했다가, 후대에 좌측의 한곳으로 모아서 배치시켰다는 설이 나오는것도, 역시. 藤島 亥治郞의 논거 없이 표시된 당간지주의 위치가 그 원인의 단초가 되었다고 볼 수 있다.

현재 2기중 동측의 1기(도면상 ③,④)는 같은 彫飾으로 만들어 진것이지만, 서측의 1기(도면상 ①②)는 전혀 다른 彫飾으로 만들어 진것이다.

따라서, 논증없는 추측에 의한 상기 일본인 학자의 일편 지식을 배제해 본다면, 다음의 주장이 훨씬 더 자연스럽고,설득력이 있다고 본다.

즉, 원래 동측의 1기의 지주만 당간지주의 본래의 목적으로 건립되었지만,
후대에 와서 신자가 넘쳐나서 전정에서 야단법석을 하기 위하여,
 서측에 1기를 추가로 공사하여 괘불대의 용도로 변용된것이라 할 수 있다.

그러므로, 현 시점에서 볼때는, 불국사의 2쌍의 지주는 괘불을 걸기위한 괘불대로 봄이 타당할것이다.
본인이 학생때 불국사의 괘불대 2쌍을 당간지주의 범주에 포함시킨것을 정정한다.